요셉과 다니엘을 통해 진정으로 배워야 할 점

기독교가 기복 신앙으로 전락해버린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히 오용되는 성경 말씀은 요셉과 다니엘 이야기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메세지를 지겨울만큼 많이 듣는다.
"청년들이여 요셉처럼 큰 꿈을 꾸고 성실히 자기 주어진 일 최선을 다해 하고 자기 개발해서 의사되고 검사되고 큰 사업가되고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이런 메세지가 잘못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요셉은 스스로 큰 꿈을 꾼 적이 없다. 이집트의 총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져본 적도 없다. 그의 꿈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신 것일 뿐 자신은 그게 뭘 의미하는지 조차 몰랐다.

둘째, 정말 요셉이 되고 싶다면 결과만 볼 것이 아니고 그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요셉의 삶은 온갖 고난과 비참함의 연속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항상 내가 요셉과 같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하지만 요셉과 같이 된다는 것이 어린 나이에 타국에 종으로 팔려가고 누명쓰고 감옥살이에 죽을 위험에 온갖 비참한 고생을 다 해야 한다는 의미인줄은 생각 못하셨던 모양이다.

셋째, 요셉이나 다니엘이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했다거나 남들보다 더 큰 꿈을 꿔서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해주셨다는 말이 성경에 전혀 없다. 그저 성경에 있는 그대로 보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꿈을 주셨고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하는 일을 잘 되게 해주셨다. 그들이 성공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왕의 꿈을 해몽한 사건인데 이것은 그들이 공부나 연구를 열심히 해서 해낸 것이 아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답을 일방적으로 가르쳐주신 것이다.

넷째, 그렇다면 요셉이나 다니엘이 스스로 잘한 일로 성경에 기록된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를 지켜 하나님 앞에 흠 없이 깨끗한 그릇이 되고자 한 것이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수없이 유혹할 때에도 자신을 깨끗하게 지켰다. 다니엘은 죽음의 위협과 온갖 유혹에도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를 택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의 핵심이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일관되고 분명하다. 디모데후서 2장에 누구든지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주인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될 것이라 하였다. 그릇에는 금그릇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고 천하게 쓰는 나무그릇 질그릇도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금그릇이 될지 질그릇이 될지는 그릇이 노력해서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릇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정하실 일이다. 다만 금그릇이라도 더러우면 버리시고 질그릇이라도 깨끗하면 귀하게 쓰신다.

기복주의, 성공지상주의 요셉 설교는 정결함보다는 큰 꿈과 큰 성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데 문제가 있다. 금그릇 은그릇이 되는 꿈을 꾸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의 메세지라기 보다는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잘난 이들이 전하는 자기개발과 성공에 관한 흔한 메세지를 포장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공부를 못하거나 능력이 부족하고 선천적으로 큰 꿈을 가지는 성향이 아닌 사람들을 신앙의 낙오자 내지는 인생의 루져로 만들어 버린다. 반면 능력있고 야심있는 사람들에게는 안심하고 더 큰 야심과 성공을 추구할 수 있는 신학적(?) 근거를 제공해준다.

요셉과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은 큰 꿈을 가지라거나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거나 총리와 같이 높은 자리에 올라 크게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 아니다. 요셉과 다니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참 교훈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의지하며 자신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지키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시고 그의 능력과 상관없이 귀히 쓰신다는 것이다.

Tags: